ABOUT ME

-

Today
-
Yesterday
-
Total
-
  • <소울 Soul(2020, 피트 닥터)>
    영화재현상 2022. 1. 10. 16:31

     

    <소울(2020, 피트 닥터)>의 이야기가 얼마나 새로운 이야기인가를 묻는다면 그렇지 않다고 대답할 것이다. 근작들만 하더라도 <보이후드>나 <패터슨>에서 경험한 종류의 울림이었고, 모태를 찾다 보면 90년대 <사랑의 블랙홀>이나 50년대 <이키루>까지 거슬러갈 수도 있는 메시지다. 더군다나 한국은 소확행과 YOLO가 국가적인 키워드였던 시절이 불과 최근이며 일련의 나영석 예능이나 TV 드라마 <눈이 부시게> 등에서 오늘을 살아가는 것의 귀중함을 수차례 보고 들은 바 있다.

     

    디즈니-픽사가 이 익숙함을 생경함으로 성큼 전환하는 방식은 비슷한 이야기의 외피를 창의적으로 구현해내는 것이다. BBC 팟캐스트에 음성 출연한 피트 닥터 감독은 기술력의 발전이 없었다면 <소울>은 만들어질 수 없는 영화임을 소회 했다. 이 영화의 시각적 성취는 디즈니-픽사의 정점이다. 디즈니-픽사의 바로 전작인 <토이스토리 4>에서 느꼈던 기술의 발전이 <소울>에선 더욱 확장되었다. 구현하려는 세계를 기술적으로, 그러나 서사에 맞갖게 황홀하게 펼쳐내는 시각 디자인 기술은 큰 극장 화면에서 볼 때 온전히 체험으로 다가온다. 이는 영화에 줄곧 흐르는 재즈 선율을 서라운드의 극장 음향으로 들을 때 영화가 고양하고자 하는 감정이 배가되는 것과 상통할 것이다. 기술의 정점을 적기에 체험할 수 있는 것이야말로 어쩌면 디즈니-픽사 영화의 걸출한 영화들을 개봉과 동시에 누릴 수 있는 관객의 동시대적 특권일지 모른다.

     

    <소울>의 서사는 양가적이다. 한쪽으로 치우칠 수 있었을 두 줄기의 이야기를 무리 없이 흥미롭게 병진해나가는 디즈니-픽사만의 스토리텔링 장기가 유감없이 발휘된다. 브루클린에서 22가 경험하는 생은 하나하나가 하염없이 생경한 새 생명의 탄생기이고, 조가 경험하는 생은 촌각을 다퉈 사위어가는 시한부 환자의 일기이다. 게다가 브루클린 전후로 결합해있는 더-그레이트-비욘드와 더-그레이트-비포에서는 조와 22의 위치와 시점이 모두 전복된다. 생성과 소멸의 두 테마를 이원화된 세계 모두에서 각각 두 배로 느낄 수 있는 포만함이 있는데 이 포만함이 넘치지 않고 딱 기분 좋게 배부른 수준이다. 디즈니-픽사는 한 영화에서 이원화된 세계 다루기를 <인사이드 아웃>과 <코코>에서도 실행해온 바 있다. 이전작들에서도 그들의 플롯 운영 방식은 준수했지만, <소울>은 배경도 캐릭터도 모두 양가인 데다 둘의 비중마저 거의 동등해 디즈니-픽사가 수행해야할 과제가 제곱으로 늘어난 것으로 그들에게 보였을 터다. 이 팀은 과제를 A+로 멀끔하다 끝마친 데다 전작들에서 발전하려는 노력의 흔적도 슬며시 내비치며 <소울>을 통시적으로 월등히 진일보한 작품으로 기억하게 만든다.

     

     

    <소울>은 훌륭하고 아름답지만 동시에 새삼스런 영화기도 했다. 첫 관람 때 충분히 만족했지만 어딘가 남는 이상한 찜찜함이 의심스러워 한 번 더 관람한 나는, 다수가 느끼는 영화 관람 후 '세상이 달리 보이는' 경험을 첫 관람 때도 둘째 관람 때도 하지 못했다. 둘째 관람까지 이르러 그 이유를 충분히 고민해보니 외람하게도 나는 조가 도달한 결론을 이미 실천 중인 사람이었다. 물론 나도 다른 사람과 다를 것 없이 연명 자체로 낙관보단 비관이 많아 밤낮으로 불안하기만 한 사람이다. 하지만 자신할 수 있는 건, 나는 찰나에 맥동하는 생의 환희와 하루를 온전히 겪는 것의 숭고함을 비교적 일찍 -영화 개봉 이전에- 깨달았고 그걸 실천하기 위해 적어도 5년을 주어진 삶 속에서 절차탁마해온 사람이라는 것이다. 우리가 스크린에서 나의 모습을 발견해 반가울 때는 지금의 내 모습일 때보다 잊었던 내 모습인 경우가 훨씬 많기에, 아직은 내 안에 있는 어떤 모습이 영화에 펼쳐지는 게 파노라마처럼 다가오진 않았다. 그래서 내가 이입할 수 있는 쪽은 조보다는 오히려 22의 입장이었다. 투쟁에 가까운 경험과 자문 속에 22가 무의식적으로 체화한 희망이 결국 좌절됐을 때의 분노가 내 시선에 더 밟혔다. 요 몇 년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며 다짐하던 결론들이 스크린에서 펼쳐질 때 느낀 익숙함이 내 감각에 새로운 빛을 틔우진 못했다. 비록 나는 충만한 백 도씨의 희열을 만끽한 관객들에 비해 <소울>의 체험을 팔십오 도씨의 뜨끈한 정도로만 끝났지만, 그렇다 하여 이 아쉬움이 <소울>에 대해 내가 느꼈던 넘치는 장점들을 뒤엎진 못한다. 이미 <소울>이 우리에게 전하려는 메시지를 깨달은 자가 억울해하는 것이야말로 <소울>이 전하고자 하는 바를 완전히 오독한 사람의 것일 터이니 말이다. 잠시 마법의 적용을 보류해두려 한다. 그래서 나는 <소울>의 개봉보다 먼저 깨달은 생의 진실을 잃은 것 같다 느낄 때 병원을 찾기 전 <소울>을 자가 특효 처방할 것이다. 그날에서야 <소울>의 효능이 백 퍼센트일 것이라고, 행복과 희망과 환열이 파도처럼 밀려올 것이라고 지금의 내가 미래의 내게 일찍이 보증한다.

     

Designed by Tistory.